파키스탄 장인들과의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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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처음 유명 브랜드 아울렛 매장에 갔던 날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대학 발표 때 입을 바지를 사러 갔다가 마음에 드는 바지 한 벌을 발견했는데, 이름이 ‘Khakis’였습니다. 어딘가 익숙한 단어였습니다. 우르두어(파키스탄어)로는 말 그대로 흙빛, 혹은 흙색을 뜻하는 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늘 그래왔듯 목구멍 깊은 곳에서 ‘kh’ 소리를 내며 그 단어를 발음했습니다.
직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다시 말해봤지만 여전히 못 알아듣더군요. 결국 바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제야 직원이 말했습니다. “아, 캐키(cacky)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 뒤로 미국 옷가게에서는 발음을 바꿔 말하게 됐지만, 그 짧은 경험은 제 호기심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남아시아에서 시작해 오늘날 서구의 옷장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 단어와 원단, 아이디어는 또 얼마나 많을까? 그 작은 순간을 계기로 저는 훨씬 더 큰 역사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한때 남아시아가 세계 섬유 무역의 중심에 있었던 역사입니다.
수세기 동안 남아시아에서는 전 세계가 감탄할 만큼 섬세한 면직물이 생산됐습니다. 그중에서도 벵골의 모슬린은 단연 돋보였습니다. 남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캘리코와 친츠 같은 프린트 면직물은 17~18세기 유럽 패션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 지역의 직물은 당시 세계 무역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영국 동인도회사가 진출해 점차 지배력을 넓히면서 흐름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현지에서 생산된 직물에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영국의 방직 공장으로 원면을 수출하도록 장려했습니다.
산업혁명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빠르게 만들었습니다. 기계식 방적과 직조 기술을 도입한 영국의 공장들은 빠르게 규모를 키웠지만, 남아시아 곳곳의 전통 장인들은 그 변화에서 밀려났습니다.
19세기 중반이 되자 영국은 세계 최대의 섬유 생산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성장의 상당 부분은 남아시아의 면화와 식민지 수탈 위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터 남아시아의 섬유 산업은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독립 이후 파키스탄은 주요 면화 산지를 기반으로 방적과 직조에서 의류 생산까지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된 섬유 산업을 꾸준히 발전시켰습니다. 오늘날 파키스탄은 세계적인 섬유 수출국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때 무너졌던 산업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럼에도 이 지역은 여전히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파트너라기보다 단순한 외주 생산기지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Big Holiday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미국인과 파키스탄에 사는 파키스탄인이 함께 만든 Big Holiday는 처음부터 세계를 바라보는 브랜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은 멀리 있는 누군가를 값싼 생산 수단으로 이용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만들고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십입니다. 착취가 아닌 협업을 선택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파키스탄에서 옷을 만드는 일을 단순한 ‘아웃소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산업화된 유럽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세계 패션의 모습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지역의 역사와 기술을 존중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가치를 함께 나누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일도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이 이야기의 또 다른 한 장일지 모릅니다.
Hasan